3월 7일 큐티나눔
누가복음 15장 1절~10절 (잃은 양을 찾는 목자 비유)
죄인을 영접하시는 예수님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잃은 양을 찾은 목자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드라크마를 되찾은 여인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드라크마 : 헬라의 은화로 1드라크마는 당시 노동자의 하루치 품삯에 해당되었다.
당시 드라크마는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결혼예물로 열개의 드라크마를 줄에 꿰어 머리를 장식했다.
(한개를 잃어버렸다는것은 한개를 잃어버린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을 잃어 버렸음을 뜻한다.)
QT나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세리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편에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던 관리였다. 이후 QT하게될 누가복음 19장에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를 보면 알수 있듯이 세금을 부당하게 많이 걷어 자신의 유익을 취하는 경우도 있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증오와 비판의 대상이였다.
민족의 배신자 세리와 당시 다양한 죄를 짓던 죄인들에게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좋게 바라볼리가 없었다. 그들은 율법에 나와있는 모든 행위를 잘지켜 스스로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 서기관 - 당시 율법을 해석하고 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함
** 바리새인 - 스스로를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부정한것을 엄격하게 구별, 율법을 엄격하게 지킴, 진지하게 율법을 연구하여 구약을 계승하려는 그룹, 당시 민중에 지지를 받음 (니고데모, 사도바울도 바리새인이였음)
서기관, 바리새인 둘다 성경에 능통한 사람 이였으나, 하나님은 죄인들의 친구 되시고 사랑이신것을 깨닫지 못했다.
구원은 행위에서 나는것이 아니라 선택받음으로 믿음에서 난다.
양은 잃은 목자와 드라크마를 잃은 여인의 공통점은 두 사건다 목자와 주인이 자신의 의도가 아닌 외부적인 환경이나 일들로 생겨난 사건이다.
우리 주님은 선택한 우리를 절대 놓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여러가지 이유에서 쉽게 놓을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우리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되찾기 원하시고 찾을 기쁨으로 인해 일하시고 계신다.
예수님 <-> 서기관, 바리새인의 대조된 모임
바리새인은 세리와 죄인(잃은 양과, 드라크마)을 그저 동물과 물건으로 취급한다.
(잃어버리면 어때 없는채로 살아가면 되지, 내가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
우리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잃은 양과, 드라크마)을 자신의 모든것 인것처럼 그리고 보물처럼 취급한다.
(찾은후에는 기뻐 즐기고 그 값보다 더 큰 나눔을 실천하신다.)
구원의 조건 -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한다.
죄인들을 품으시고 회개를 하면 기뻐하시는 주님 그분 앞으로 나아갈때 진솔한 회개와 주님의 자녀된 기쁨으로
죄를 점점 미워하고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붙잡힌자가 내가 되길 바란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사무엘상 17장 34절~35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장 1절)
목자였던 다윗은 대부분의 시간을 양들과 동행했고, 자기 양떼에게 위험이 닥치면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켰다.
그 마음을 알았던 다윗이 시편에서 주님이 자신의 목자 되시고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이끌어 가심을 여러번 고백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장14절~15절)
주님께서 나를 아시는것이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아는것과 같다고 한다.
감동이 아닐수 없다. 성부 성자 두분은 모두 하나님이신데 나는 죄인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마치 나를 죄없는 사람처럼 완전한 인간으로 받아주신다는 말씀이다. 죄 많은 인간이고 피조물인데 우리의 회개를 기뻐하신다니.. 나를 그렇게 허물없이 대하신다니 그 은혜에 감동받고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되길.. 그리고 내가 도구 및 통로가 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고 죄중에 빠져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 회개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바라고 기도한다. QT나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세리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편에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던 관리였다. 이후 QT하게될 누가복음 19장에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를 보면 알수 있듯이 세금을 부당하게 많이 걷어 자신의 유익을 취하는 경우도 있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증오와 비판의 대상이였다.
민족의 배신자 세리와 당시 다양한 죄를 짓던 죄인들에게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좋게 바라볼리가 없었다. 그들은 율법에 나와있는 모든 행위를 잘지켜 스스로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 서기관 - 당시 율법을 해석하고 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함
** 바리새인 - 스스로를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부정한것을 엄격하게 구별, 율법을 엄격하게 지킴, 진지하게 율법을 연구하여 구약을 계승하려는 그룹, 당시 민중에 지지를 받음
(니고데모, 사도바울도 바리새인이였음)
서기관, 바리새인 둘다 성경에 능통한 사람 이였으나, 하나님은 죄인들의 친구 되시고 사랑이신것을 깨닫지 못했다. 구원은 행위에서 나는것이 아니라 선택받음으로 믿음에서 난다.
양은 잃은 목자와 드라크마를 잃은 여인의 공통점은 두 사건다 목자와 주인이 자신의 의도가 아닌 외부적인 환경이나 일들로 생겨난 사건이다. 우리 주님은 선택한 우리를 절대 놓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여러가지 이유에서 쉽게 놓을때가 많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우리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되찾기 원하시고 찾을 기쁨으로 인해 일하시고 계신다.
예수님 <-> 서기관, 바리새인의 대조된 모임
바리새인은 세리와 죄인(잃은 양과, 드라크마)을 그저 동물과 물건으로 취급한다.
(잃어버리면 어때 없는채로 살아가면 되지, 내가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
우리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잃은 양과, 드라크마)을 자신의 모든것 인것처럼 그리고 보물처럼 취급한다. (찾은후에는 기뻐 즐기고 그 값보다 더 큰 나눔을 실천하신다.)
구원의 조건인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한다.
죄인들을 품으시고 회개를 하면 기뻐하시는 주님 그분 앞으로 나아갈때 진솔한 회개와 주님의 자녀된 기쁨으로 죄를 점점 미워하고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붙잡힌자가 내가 되길 바란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사무엘상 17장 34절~35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장 1절)
목자였던 다윗은 대부분의 시간을 양들과 동행했고, 자기 양떼에게 위험이 닥치면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켰다. 그 마음을 알았던 다윗이 시편에서 주님이 자신의 목자 되시고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이끌어 가심을 여러번 고백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장14절~15절)
주님께서 나를 아시는것이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아는것과 같다고 한다. 감동이 아닐수 없다. 성부 성자 두분은 모두 하나님이신데 나는 죄인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마치 나를 죄없는 사람처럼 완전한 인간으로 받아주신다는 말씀이다. 죄 많은 인간이고 피조물인데 우리의 회개를 기뻐하신다니.. 나를 그렇게 허물없이 대하신다니 그 은혜에 감동받고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되길.. 그리고 내가 도구 및 통로가 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고 죄중에 빠져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 회개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바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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